글을 시작하며
195cm의 큰 키에 아크로바틱 골도 수차례 기록하며 세계축구계를 호령했던 스웨덴의 축구스타 즐라탄 이브라히 모비치. 스웨덴 축구계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뛰어난 재능, 카리스마, 당당한 성격, 특히 상남자스러운 행동과 멘트로 세계팬들을 사로잡았다. 20년이 넘는 경력을 지닌 이브라히모비치는 그라운드에서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으며, 그라운드에서의 행동뿐 아니라 필드 밖에서도 다양한 이슈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삶과 커리어에 대해 알아보고, 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부터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기까지의 스토리를 알아보자.
빈민촌에서 자란 소년, 말뫼 FF에 입단하다
즐라탄은 1981년 10월 3일, 스웨덴 말뫼 지역인 로젠고르드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세픽'과 어머니 '유리카'는 각각 보스니아계와 크로아티아계로 제3 국인 스웨덴에서 만나 결혼하였다. 즐라탄에게는 2명의 남자 형제와 3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는데, 이중 오직 2명만이 친형제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즐라탄 위의 형과 누나는 아버지가 어머니와 결혼 전 다른 여자와의 관계에서 얻은 아이들이었고, 막냇동생은 부모가 이혼 후 어머니가 재혼하고 얻은 아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듯 꽤나 복잡한 가정사를 가지고 있던 즐라탄은 범죄와 욕설이 난무하는 동네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차별과 모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즐라탄에게 한줄기 빛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축구였다.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즐라탄을 알아본 아버지는 즐라탄이 만 6세가 되던 해에 말뫼 BI 유스팀에 입단시켰다. 그곳에서 축구를 배우며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패스 좀 해 즐라탄!"이었는데 이런 소리에 지겨워진 꼬마 즐라탄은 여러 유스팀을 전전하다가 FBK 발칸에 입단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팀이 평가전에서 0 대 4로 수세에 몰리자 후반전에 교체 투입되어 혼자 8골을 넣었을 만큼 크게 성장하며 축구실력을 키워나갔다. 결국 그는 남다른 축구 재능을 과시하며 만 15세에 스웨덴 축구 명문 말뫼 FF에 입단하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아스날 말고 아약스
말뫼 FF에 입단한 즐라탄은 취업과 축구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말뫼 항만 부두 일을 제의받았는데 감독의 설득으로 인해 축구에 전념하기로 한다. 이때 아마 그가 취업을 선택했다면 그를 그라운드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축구에 매진하며 실력을 키우던 1999년, 그는 마침내 1군으로 프로 축구선수로서의 첫발을 내딛는다. 그는 데뷔 시즌 거침없는 성격과 독단적인 플레이, 직설적인 인터뷰로 인해 수많은 팬들의 미움을 받게 된다. 많은 팬들이 집 앞에 찾아와 괴롭히는 바람에 그는 당시 집 밖에 나가지 않으며 게임만 하였는데 어느 날 문득 그는 강해져야 무시받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축구에 더 매진하게 된 즐라탄은 다음시즌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나 오히려 기회를 많이 얻었고 26경기 12골을 넣으며 팀의 승격을 도왔다. 그런 즐라탄을 주목했던 아스날의 "아르센 뱅거"감독은 그를 자신의 팀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다. 즐라탄 자신도 아스날에 제의에 마음이 흔들려 런던으로 넘어가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 사진까지 찍게 되었다. 하지만 아스날 측에서 입단 테스트를 요청하는 바람에 즐라탄은 "난 오디션 따위는 하지 않는다"라며 입단을 거절하고 뒤늦게 영입에 뛰어든 아약스로 2001년에 이적하게 된다. 당시 그의 이적료는 870만 유로로 당시 그의 나이와 스웨덴 리그 선수였다는 점에서 상당한 고액이었다.
우승이 제일 쉬웠어요
자존심을 상하게 한 아스날을 뒤로한 채 아약스로 훌쩍 떠나버린 상남자 즐라탄은 승긍장구 했다. 시즌 초 중반까지 주전이 아니었지만 '로날드 쿠먼'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며 그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게 된다. 아약스에서 유벤투스로 이적한 2004년 이후에는 195cm의 큰 키에서 나오는 제공권 장악, 압도적인 피지컬, 화려한 기술, 축구 지능을 바탕으로 말 그대로 유럽축구를 뒤흔들었다. 유벤투스에서 활약 후 그는 인테르로 이적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117경기 66골을 기록하며 축구선수로서 전성기에 들어서게 된다. 2009-10 시즌에서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는데 메시와의 공존 문제로 인해 한 시즌 주춤했으나, 이 표현은 즐라탄을 기준으로 봤을 때이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16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메시와의 공존을 택하지 않은 즐라탄은 AC밀란으로 넘어가 자신에게 익숙한 세리에 A에서 2011-12 시즌 28골을 넣으며 득점왕 타이틀을 재탈환한다. 그렇게 또 우승을 한 그는 새로운 도전으로 리그 1을 선택하게 된다. 당시 신흥 갑부 구단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여 입단 첫 해 30골을 넣으며 다른 행성에서 온 선수라는 평을 듣게 된다. 리그 1을 평정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넘어가 두 시즌 동안 53경기 29골을 기록했지만 그는 또 훌쩍 LA 갤럭시로 떠난다. LA갤럭시에서는 58경기 53골이라는 초인적인 기록을 세운다. 그렇게 미국으로 넘어가 활약한 그는 다시 AC밀란으로 돌아와 2020-23 동안 78경기 37골을 기록하고 2023년 6월 AC밀란에서 은퇴를 하게 된다. 절대 울지 않을 것 같던 그도 은퇴식에서는 눈물을 흔들렸는데 은퇴식에서도 상남자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마지막까지 그 다운 모습을 보여 주며 은퇴를 하며 화려했던 커리어를 마감하게 된다.
독보적인 존재감을 가졌던 레전드
축구계에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같은 존재감과 자신감을 가졌던 선수는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그가 유일하다. 실력을 차치하더라도 그의 캐릭터는 메시, 호날두와는 결을 달리하는 존재감을 가졌다. 그의 어록들은 인터넷상에서 꽤나 유명한 밈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독보적인 실력, 넘치는 자신감, 카리스마로 전 세계 많은 팬들에 사랑을 받았지만 그만큼 안티팬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던 선수였고 마지막 은퇴식에서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축구역사상 전후무후한 캐릭터인 그가 앞으로도 축구계에서 종종 모습을 보이며 축구발전을 위해 많은 일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즐라탄에 관한 재밌는 사실들
1.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아약스 3년 차였던 2003년부터 AC밀란에서 활약했던 2010-11 시즌까지 리그를 옮기며 무려 8 시즌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 그는 축구경기 1분부터 90분까지 모든 시간에 득점을 기록했다.
3. 자타공인 호나우도 팬이었던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호날두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유는 호날두는 오직 한 명이라는 이유였다.
4. 그는 태권도 검은띠 유단자이다. 어릴 적 태권도를 시작해 17살에 검은띠를 가지게 되었다.
5. 한때 중국에서 1300억의 연봉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였다. 자신을 데려가려면 1300억 이상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축구선수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란체스코 토티, AS로마의 원클럽맨 (0) | 2024.01.15 |
---|---|
모하메드 살라,이집트 축구의 구세주 (0) | 2024.01.12 |
킬리안 음바페, 현 시점 세계 최고 선수 (2) | 2024.01.11 |
프란츠 베켄바워, 별이 된 독일축구의 황제 (4) | 2024.01.10 |
리오넬 메시, 그는 살아있는 축구의 신이다. (2) | 2024.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