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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소개

루이스 수아레스, 성장과정, 커리어, 경기 스타일

by 볼대장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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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s://commons.wikimedia.org/

성장과정

루이스 수아레스는 우루과이의 항구 도시 살토에서 1987년 1월 24일 태어났다. 7형제  중에 넷째로 태어난 수아레스의 어릴 적 환경은 매우 불우했다. 그의 나이 9살 때 부모가 이혼하게 되어 그의 모친 산드라 디아스가 홀로 7형제를 모두 부양했기 때문이다. 리버풀 시절 인터뷰에서는 '어릴 적에는 잔디 구장에서 뛰어 본 적 조차 없고, 축구공을 살 돈이 없어 종이를 구겨 축구화를 만들어 벽을 골대 삼아 축구를 했다'라고 회고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을 견디던 그는 14세가 되던 때에 우루과이의 명문구단 나시오날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축구에 재능은 있었지만 제대로 된 축구를 배워 본 적이 없어, 팀 플레이 이에 녹아들지 못했다. 당시 수아레즈는 축구보다는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았는데, 경기 중에도 심판과 말다툼을 벌이는 등 각종 사고를 달고 다니게 되어 당시 팀의 코치가 퇴출 예고 통보를 하기에 이른다.

 

사고뭉치로 각인되어 퇴출 위기에 직면한 수아레스를 정신 차리게 한건 바로 지금의 아내 소피아였다. 공부에도 관심 없었고 축구경기에서는 악동이었던 그는 소피아를 만나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졌고, 그는 어느샌가 유스팀에서 63골을 폭격하는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소피아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족과 함께 이주하게 되는데, 그는 축구선수로 성공해 유럽에 진출하여 다시 그녀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축구에 전념하게 된다. 타고난 재능에 훈련이 더해지자 그는 18세의 나이에 프로무대에 데뷔하게 되고 27경기 10골을 넣으며 많은 클럽의 관심을 받게 된다.

 

수아레스에게 관심 있었던 구단 중 네덜란드의 FC흐로닝언이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본인도 유럽 진출에 적극적이어서 80만 유로로 이적에 성공한다. 흐로닝언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서는 훗날 그가 밝히게 되는데, 당시 소피아와 장거리 연애를 하고 있던 터라 그녀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어 흐로닝언을 고집했다고 한다.

초기 커리어

소피아에 대한 그리움으로 네덜란드로 날아간 그에게 새로운 문제가 생겼는데, 바로 그는 영어는 물론 네덜란드어를 조금도 구사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구단측에 소피아를 자신의 통역사로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구단의 승낙을 받고 그녀를 다시 곁에 둘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마음의 평온을 되찾고 빠른 속도로 네덜란드 리그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2006년 UEFA컵 교체 투입된 경기에서 데뷔골을 터트리고, 그 시즌 27경기 10골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유럽 데뷔 시즌을 보내게 된다. 

 

성공적인 데뷔 시즌 후에는 명문 아약스에서 그에게 관심을 보여, 750만 유로의 가격으로 이적하게 된다. 이 이적료는 그가 1년전 받았던 이적료에 무려 10배가 오른 가격이었다. 당시 아약스에는 훈텔라르라는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버티고 있었기에 그는 오른쪽 측면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새로운 포지션에서 그는 훈텔라르와 좋은 궁합을 선보이며 팀의 새로운 콤비를 결성하게 된다. 2008년 바르코 반 바스텐 감독이 부임한 후 그는 그동안 부족했던 슈팅 정확도와 개인 기술을 발전시켜 31경기 22골 14 도움을 기록한다. 아쉽게 1골 차이로 득점왕을 놓치게 되지만, 더욱 발전한 기량으로 네덜란드 리그 최고 공격수로 등극한다. 

 

자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던 마르코 반 바스텐 감독이 1년만에 팀을 떠나고 새로 부임한 마틴 욜 감독은 초강수를 던진다. 바로 수아레스를 주장에 임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리그 최고 공격수였지만 경기장에서의 악동적인 성향은 불안요소였다. 주장직을 맡자 수아레스는 책임감을 보이며 팀을 위해 희생하는 선수로 탈바꿈하게 되는데,  33경기 35골을 넣으며 지난 시즌 아쉽게 놓쳤던 득점왕 타이틀도 거머쥐게 되었다. 

전성기 커리어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던 수아레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엽기적인 행동들을 보여 안 좋은 이미지를 세계 축구 팬들에게 심어주게 된다. 이런 상황에 그는 더욱 심각한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데, 바로 2010년 11월 20일 PSV아인트호벤과의 경기에서 주심 몰래 상대 선수 오트만 바칼의 어깨를 깨무는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아약스의 식인종'이라고 불리며 팬들에게는 조롱을 받고, 7경기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수아레스의 핵이빨 3부작 중 첫 번째로 팬들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3부작 시리즈의 이름을 응용하여 이른바 '핵이빨 비긴즈' 사건으로 불린다. 이 에피소드들은 후에 다뤄 보기로 하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겨울 이적시장이 다가오고 리버풀이 수아레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수아레스로 고민이 많았던 아약스는 별 고민 없이 그를 리버풀에 2,28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받고 그를 넘겨주게 된다. 리버풀에 입단한 수아레스는 스토크 시티와의 데뷔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데뷔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르게 된다. 리버풀에서도 그는 실력과는 별개로 많은 논란과 사건으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당시 주장 제라드와 사이가 돈독했다고 전해지며, 그래서 그런지 그는 리버풀이라는 클럽을 정말 좋아한다고 한다. 그의 첫째 딸 이름이 Delfina(델피나)인데 이름의 철자를 재배치해보면 리버풀 홈구장 이름인 Anfield(안필드)가 된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리버풀을 각별히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그는 리버풀에서 총 4시즌 133경기 82골 29 도움의 기록을 남기고, 2014년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스페인으로 넘어간 그는 메시와 네이마르와 함께 삼각편대를 완성하게 된다. 첫 시즌부터 이 삼각편대의 파괴력은 대단했고, 그도 새로운 리그에 완벽히 적응하며 팀이 트레블을 달성하는데 중심적인 활약을 한다. 두 번째 시즌부터는 멘털적인 부분도 좋아져 사건 사고도 잘 일으키지 않아 팬들이 환호하게 된다. 거기다가 기량이 최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어 라리가 역사상 최초로 득점왕과 도움왕을 동시에 차지하는 선수가 된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총 6 시즌을 보내며 283경기 198골 97 도움을 기록하며 바르셀로나의 최전성기를 이끌었고, 2020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최고령 선수가 된 그는 동료 선수들을 이끌고 라리가 우승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 시즌 수아레스는 리그에서 11번의 결승골을 넣어 유럽 5대 리그 중 제일 많은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되기도 한다. 리그 우승이 확정되고 그라운드에서 펑펑 우는 그의 모습도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로 기억된다.

경기 스타일

수아레스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온더볼 능력을 갖춘 선수이다. 남미 선수들 특유의 유연함과 낮은 무게 중심으로 몸싸움이 잘 밀리지 않으며, 두꺼운 몸과 허벅지로 버티는 힘까지 좋아 공을 잘 뺏기지 않는다. 불규칙한 타이밍의 드리블로 수비수를 농락하고 패스로 만드는 연계 플레이도 수준급이다. 다만 볼터치는 좋지 않은 편이어서 볼을 운반할 때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 

 

체력은 엄청나지만 주력은 빠른 편이 아니며 턴오버 비중이 높아 상대에게 역습을 허용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멘털적인 부분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저지를지 알 수 없어 항상 불안요소로 꼽혔다. 그러나 그는 꽤 영리하고 지능적인 선수로 평가받는데 오프사이드 라인 브레이킹 능력은 역대 최고라고도 불린다. 유연한 몸으로 순간적으로 턴하여 갑자기 라인브레이킹을 시도하기 때문에 수비수들을 당황시키며 골을 만들어 내는 장면은 그가 왜 월드클래스였는지 알게 해 준다.

글을 마치며 

리그와 팀을 가리지 않고 항상 최고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각종 사고로 자신의 평가를 스스로 갉아먹었던 루이스 수아레스. 하지만 그는 경기장 밖에서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선수라고 전해진다. 이렇게 복합적인 면이 그를 매력적인 선수로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전성기가 지나 예전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현재 미국의 인터마이매이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의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게 된 그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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