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재능 있는 어린 선수에서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사랑하는 축구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안티 팬이 늘어났지만 그의 축구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삶과 카레 어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의 최고점과 최저점, 그리고 특별한 순간들을 다뤄보겠다.
어린 시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1985년 2월 5일, 포르투갈 서남단에 위치한 마데이라 섬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풀네임은 상당히 긴 편인데 호날두 도스 산토스 아베이로, 우리가 흔히 부르는 호날두라는 이름의 유래가 조금 흥미롭다. 그의 부친 조세 디니스와 모친 마리아가 모두 미국의 40대 대통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을 존경하고 좋아하여 그의 이름 로날드를 따와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대서양의 대표적 휴양지인 마데이라 섬에서 태어났지만, 호날두는 그 지역에서 손꼽히는 빈민가에서 자랐다. 비가 내리면 곳곳에서 비가 샜고, 그의 부친은 알코올 중독이 심하여 모친인 마리아가 요리사로 일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런 어린 호날두에게 즐거움은 바로 축구였다. 다른 아이들이 장난감 차를 가지고 놀 때 호날두는 장난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축구공만 가지고 놀았다. 심지어 잠잘 때조차 축구공을 안고 자는 아이였다.
만 6세가 되던 해에 지역 아마추어팀인 안두리냐에 입단하여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어린 호날두는 스카우트의 눈에 띄게 되어 나시오날에 입단하게 된다. 나시오날도 포르투갈에서는 알아주는 클럽이었지만 축구에 재능이 많던 호날두를 위해 그의 대부인 페르낭은 스포르팅 리스본으로 그를 이적시킬 준비를 한다. 집에서 800km나 떨어져 있어 그의 모친은 고심이 많았지만 아들의 미래를 위해 리스본으로 아들을 보내기로 한다.
그렇게 집에서 멀리 떨어진 리스본에서 3일간의 테스트를 받고 그는 스포르팅으로 이적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나이 만 12세였다. 하지만 스포르팅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조금 힘들었다. 바로 당시 그가 사투리를 심하게 썼던 편인데 동료 선수들이 그를 놀리며 그를 따돌렸던 것이다. 그리고 만 15세에는 심장 부정맥이 발견되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할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디행히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다시 그는 꾸준한 훈련으로 자신의 기량으로 따돌리던 동료들을 실력으로 인정시키고 만다.
경력
시련을 이겨낸 호날두는 2002년 8월 14일, 인테르와의 챔피언스리그 예선전에서 교체 투입되어 1군 데뷔전을 치뤘다. 같은 해 10월 7일에는 리그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며 자신의 데뷔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시간이 지난 2003년 여름 스포르팅은 새 구장 건립 기념으로 맨체스터와의 친선전을 치렀는데 그는 이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프로 경력 1년의 선수를 1,500만 유로라는 거액에 영입한다. 그리고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징인 7번을 이어받는다.
사실 그가 원한 번호는 28번이라고 전해지는데, 어린 나이에 그 번호의 의미를 알고 뛰기엔 부담스러워 거절하고 스포르팅에서 달았던 28번을 원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고 그에게 7번을 주었다. 어린 시절 가난한 환경을 버텨야 했던 호날두는 맨체스터 입단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족 부양이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와 가족들을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던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입단 초반에는 몸싸움과 지나친 개인플레이로 비판 여론이 있었지만 2004년 자국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로대회를 기점으로 한 단계 발전한 기량을 선보이게 된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전와의 8강전에서 팀 동료 웨인 루니를 퇴장시키는데 일조하여 잉글랜드 팬들의 비난을 받으며 스페인으로 이적할뻔했지만 퍼거슨 감독의 만류로 팀에 남게 된다. 원정경기마다 지독한 야유를 받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로 성장하고 그는 2008년 발롱로르를 비롯한 상이란 상은 모두 독점하며 자신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전 세계에 알린다.
맨체스터의 상징이었던 호날두는 2009년 9,400유로(한화 1,340억 원)의 이적료로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후 첫 시즌에서 29경기에서 26골을 넣으며 새로운 리그에서도 자신의 레벨을 증명했다. 2018년까지 자신의 전성기 시절에 프리메라리가를 맹폭격하던 호날두는 이탈리아 클럽 유벤투스로 이적하였다. 이 시점부터 조금씩 기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그의 당시 나이를 감안하면 기록 자체도 좋았으며 떨어진 기량으로도 세리에 A득점왕도 수상한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돌아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예전 같지 않았고 텐하흐 감독과의 불화와 전성기를 지나 내려가버린 폼, 자신을 키워주던 클럽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사우디리그 알 나스르 FC로 이적하여 현재도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경기 스타일
먼저 맨유에서의 호날두는 측면을 박살내는 최고의 크랙이었다. 이적 초기 스텝오버를 남발하고 팀의 템포를 뺏는 개인주의적 플레이로 많은 비판도 있었지만 엄청난 스피드와 드리블, 점프력을 바탕으로 점점 기량이 발전하게 된다. 드리블과 스피드로 돌파하는 플레이를 즐겼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엄청난 점프력으로 여러 헤더 득점을 만들었다.
또 하나 호날두하면 빼놓을 수없는 것이 슈팅력이다. 커리어가 쌓여갈수록 양발 활용도가 높아져 어느 각도에서도 골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슈팅력으로 프리킥으로 아주 많은 골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발목힘을 바탕으로 무회전 프리킥을 차는데 능숙하고 그로 인한 원더골도 많이 만들어냈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후에는 '오프 더 볼' 움직임으로 골을 노리는 스트라이커로 플레이 스타일이 바뀐다.플레이 스타일이 바뀐 이유는 무릎부상이 심해지며 폭발적으로 드리블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드리블로 변수를 창출했던 크랙에서 위치선정을 통한 피니셔로 변하게 된다.
전성기가 지나버린 나이에 이적한 유벤투스 시절의 플레이와 커리어도 나쁘지 않았지만 윙어로서의 능력이 예전같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릎부상과 웨이트로 인하여 커져버린 덩치로 예전만큼 드리블의 민첩성이 떨어졌고 전술적인 문제로 그의 장점이 활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떨어진 폼으로도 세리에 A 득점왕, 올해의 선수상, MVP를 수상했다.
글을 마치며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많은 안티 팬을 보유하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사실 이 선수에 대한 포스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됐었다. 하지만 이 선수를 소개하지 않으면 어떤 선수를 소개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건방지다는 평가를 듣는 선수이지만, 그는 기부활동도 열심히 하고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자선사업도 많이 펼치는 사업가이도 하다. 패션테러리스트로 유명하고, 노래를 좋아하지만 지독한 음치이며, 휴가를 떠나서도 자기 관리를 잊지 않는 프로페셔널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양한 면모가 있어 그가 사람들에게 더 화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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